크립 (Crib)
크립(crib, 추정 평문)은 암호 해독에서 암호문 속에 들어 있으리라 추정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평문 조각입니다. 크립을 실마리로 키나 암호기 설정을 찾아내는 기법을 크리빙(cribbing)이라고 하며, 알려진 평문 공격의 한 형태입니다. 'crib'의 '아기 침대'라는 일상적 의미와는 관계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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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은 메시지 형식의 습관에서 나옵니다. 정해진 머리말과 서명, 날씨 보고처럼 매일 같은 형식으로 오는 전문, 부대 이름이나 "특이사항 없음" 같은 상투적 문구가 대표적입니다. 해독자는 크립이 암호문의 어느 위치에 대응하는지 가정한 뒤, 그 가정이 키나 장치 설정과 모순되지 않는지 검사합니다. 모순이 생기는 위치는 제외하고, 남은 후보를 좁혀 가는 방식입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블레츨리 파크의 에니그마 해독입니다. 에니그마는 어떤 글자도 자기 자신으로 암호화되지 않는다는 구조적 특성이 있어, 크립을 암호문에 겹쳐 보며 같은 글자가 같은 위치에 오는 배치를 바로 제외할 수 있었습니다. 앨런 튜링 등이 설계한 전자기계 장치 '봄브(Bombe)'는 크립을 바탕으로 회전자 설정 후보를 자동으로 검사했습니다.
크립은 꼭 정확한 평문일 필요는 없습니다. 메시지에 특정 단어가 '어딘가에' 들어 있다는 정도의 추정만으로도 후보 위치를 하나씩 검사할 수 있습니다. 해독자들은 상대가 일부러 알려진 문구를 쓰게 만드는 방법도 썼는데, 특정 해역에 기뢰를 부설해 적이 그 좌표를 보고하게 하는 식의 작전이 '가드닝(gardening)'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블록체인·암호화폐에서는
현대 암호(AES, ChaCha20 등)는 공격자가 평문 일부를 알거나 심지어 고를 수 있어도 키를 알아낼 수 없도록 설계되며, 이를 알려진 평문·선택 평문 공격에 대한 안전성이라고 합니다. 데이터에는 늘 예측 가능한 헤더(파일 형식, JSON 구조 등)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키나 논스를 재사용하는 잘못된 구현에서는 크립과 같은 원리가 다시 위력을 발휘합니다. 예컨대 같은 키스트림으로 암호화된 두 메시지 중 하나의 일부 내용을 알면 다른 메시지의 같은 위치가 드러납니다.
블록체인 데이터를 분석할 때도 비슷한 사고방식이 쓰입니다. 알려진 금액이나 시점이라는 '크립'을 이용해 주소의 소유자를 추정하는 것이 체인 분석의 기본 기법입니다.
쉽게 말하면
퍼즐을 풀 때 "이 자리엔 분명 '안녕하십니까'가 들어간다"고 짐작하고 거기서부터 맞춰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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